[두번째]“조영남이 앤디 워홀과 뭐가 다르냐고?” 30대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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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리는 젊은 화가
그림을 그리는 젊은 화가

‘조영남 그림 대작사건’에 천경자·이우환 화백 위작사건까지 겹치면서 우리나라 미술계가 큰 홍역을 치르고 있습니다.

고(故) 김환기 화백의 대형 점화(點畵)를 중심으로 우리나라 작품들이 모처럼 세계 미술시장에서 인정받는 시기에 터진 사건이라 너무 안타깝습니다. 얼른 사건이 마무리돼 미술계가 빨리 안정되길 바랄 뿐입니다.

필자는 조영남 사건을 쭉 지켜보면서 한 가지가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사건에 대한 미술계 현장의 솔직한 생각입니다. 그동안 수많은 소식들이 전해졌지만, 정작 미술계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물론 미술인협회 등에서 단체로 조영남을 고소하고, 평론가나 비평가 등 주변의 목소리는 적잖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직접 당사자로 보이는 화가들의 솔직한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미술에 일생을 걸고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해가는 화가들의 생각이 궁금했습니다.

이에 현직에서 활동하는 화가 2명과 큐레이터 1명에게 똑 같은 질문을 던져봤습니다. 질문의 핵심은 ‘이번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와 ‘조영남이 구체적으로 미술계에 어떤 피해를 입혔나?’ 등 크게 두 가지입니다.

무얼 그릴까 고민하는 화가 캐러커처
무얼 그릴까 고민하는 화가 캐러커처

직접 인터뷰를 진행했지만, 실명이 부담스럽다고 해서 익명으로 정리했습니다. 이들의 말을 거르지 않고 가감 없이 전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다소 거친 표현이 있어도 이해를 바랍니다.

#2. 전편 50대 여류화가 J의 인터뷰에 이어 약속한데로 두 번째 화가 K의 인터뷰를 내보냅니다. 그는 유럽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돌아와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하며 스스로의 예술 세계를 완성해가는 30대 남성화가입니다. 촉망받는 이 화가는 최근에도 개인전을 열어 성공을 거뒀습니다.

-조영남 작품을 예술로 보는가?
“‘좋은 예술인가?’라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대답하겠다. 하지만 ‘그것이 예술인가’라고 묻는다면 딱 잘라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무엇이 예술인가를 구분하는 명확한 기준이, 근거가 제겐 없다. 냉정하게 말해서 조영남이 미술작가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특별한 기준도 제게는 없다.”
-이번 사건이 우리나라 미술계에 어떤 영향을 끼쳤다고 보는가?
“사회적으로 꽤 관심을 모았다. 덕분에 너도나도 한마디씩 거들었고, 미술계 입장에서는 괜찮은 홍보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시끄러운 초상집이 사람 그림자도 없는 흉가보다 낫지 않을까?”
-사건의 가장 큰 피해자는 누구일까?
“조영남 작품이 화단의 주류는 아니다. 그의 작품을 진지한 미술로 대했던 사람들이 미술계는 물론 우리 사회 전체로 봐도 많지는 않다고 본다. ‘이 사건의 피해자는 진지하게 작업하는 많은 작가들이다’라는 의견도 있지만, 글쎄 그 누구도 조영남을 진지한 미술가로 여기지 않았다면 이제 와서 그 때문에 피해를 입을 이유도 없지 않을까?
그렇다면 누가 피해자일까? 조영남의 미술작품을 구매한 사람들일까? 조금 더 지켜봐야 할 문제다. 어쩌면 시간이 지나면서 가치가 오히려 오를지도 모른다. 제가 만약 대형 미술관의 책임자나 프로모터라면 빨리 그의 단독 전시를 기획할 것이다. 두 번 다시없을 타이밍이니까.”

-왜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보는가?
“미술의 기준이 모호해졌는데 이런 일이 안 생기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사실 40~50년 전에 벌어졌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가 많이 늦은 편이다. 나쁘게만 볼 일도 아니다. 조영남은 본의 아니게 무엇이 예술인가라는 철학적 화두를 대중에게 던진 셈이 됐다. 100명 중 99명은 혀를 차고 말겠지만 적어도 1명은 그것에 관해 생각할 것이다. 그 1명이 훗날 우리나라 미술계의 소중한 자산이 되지 않을까 기대를 걸어본다.”

-앤디 워홀, 데미안 허스트, 제프 쿤스 등 세계적인 작가들도 타인에게 물리적 작업을 시키는데 조영남과 뭐가 다른가?
“굳이 따지고 들자면 그것을 숨겼다 정도일 것 같다. 그전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면 앤디 워홀과 데미안 허스트는 상당히 결이 다른 작가들이다. 작품을 공장에서 찍어내는 행위가 앤디 워홀에게는 매우 중요한 개념적 핵심이었다. 그러나 데미안 허스트가 이런 생산방식을 고집하는 이유는 그것이 딱히 본인 작품의 개념적 핵심이기 때문은 아닌 듯하다. 그것이 오늘날의 현대미술에서 작가가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생산방식 중 하나가 돼 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그저 여러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한 것이다.
조영남이 앤디 워홀을 거론하며 자신을 변명 했을 때는 정말 아쉬웠다. 그의 작품이 반드시 조수가 찍어내야 할 개념적 당위성이 없는 상태에서는 차라리 데미안 허스트를 거론했어야 했다. 흔히 말하듯 작가의 손맛을 드러낸다는 표현적 성향의 회화조차 데미안은 직접 그리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야말로 최고의 모범사례였는데 안타깝다.”
-설명을 조금 더 보충한다면?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도 조수가 했고, 조영남도 조수가 했다. 이 사실을 숨겼든 드러냈든 작가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했다는 본질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결국 숨기고 안 숨기고는 부수적인 문제에 불과한 것이다. 게다가 지금까지 미술의 역사가 증명했듯이, 남이 제작했다고 해서 예술의 가치가 하락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이 조건은 조영남에게도 똑같이 적용돼야 공정할 것이다. ‘그래서 뭐가 다르냐?’고 묻는다면 저들은 조영남보다 훨씬 유명하다고 말하고 싶다.”
화가-만약 조영남이 대작이라고 말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여러 면에서 더 좋았으리라 본다. 조영남 정도의 유명인이 60억 원이 넘는 그의 고급 빌라에서 붓 몇 개 손에 쥐고 화가놀이를 하는 것은 생각보다 위험하다. 그런 행동이 노숙자보다 약간 낳은 수준의 삶을 살아가는 수많은 미술인들의 반발을 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심각한 오산이다. 차라리 작품을 뽑아내는 공장을 차리고, 약간은 철없는 사장 놀이를 했다면 반응은 훨씬 괜찮았으리라 본다. 조영남이 조금 더 치밀했다면 혹은 조금 더 현대미술과 미술사에 해박했다면 분명 먼저 밝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뒤늦게 앤디 워홀을 거론하며 자신을 변호하는 자충수 또한 두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사건에 대해 동료 예술가들과 얘기해본 적은 있는가? 있다면 뭐라고 하던가?
“전반적으로 제 주변 작가들은 이 문제에 무관심하다. 애초에 조영남을 작가로 인정하지 않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굳이 작가들의 반응을 분석해야 한다면, 이 문제로 분개하는 많은 작가들은 주로 50~60대 이상의 기성세대들인 것 같다. 젊은세대 작가들은 이 문제에 정말로 관심이 없다. 현재 화단에서 기성세대와 젊은세대 작가들이 보이는 생각의 온도차는 꽤 크다. 그것은 낭만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 사이 정도의 거리 차로 비유할 수 있다. 전자는 예술이 신이 내린 영감의 산물이며, 고로 천재의 숭고한 영역이라 믿는다. 이우환 작가를 봐도 알 수 있다. 그는 위작논란을 둘러싸고 이런 말을 했다. ‘나만의 호흡과 나만의 리듬은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대의 젊은 작가들은 그런 수준의 자기 확신을 도저히 가질 수 없는 세대들이다.”
-덧붙여 설명한다면?
“조영남 작품의 근저에는 ‘그냥, 뭐 재밌잖아’라는 기조가 짙게 깔려 있다. ‘그냥’은 천재의 영역이다. ‘그냥’ 느낌에 따라서 작품을 뚝딱 만들어내는 것은 범인으로서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영역인 것이다. 저는 그것은 피카소의 영역이라고 본다. 미술사는 물론 철학과 사회 구조와 인간을 연구해야하는 오늘날의 젊은 작가들은, 그래서 석-박사가 넘쳐나는 이곳에서는, 리서치와 공부에 쏟아 붇는 시간이 실제 작품 제작 시간보다 길다. 엉덩이를 진물이 날 때까지 의자에 붙이고 공부를 해야만 한다면 그것은 천재가 아님의 방증이 아닐까? 결국 조영남이 본의 아니게 침범한 곳은 평범한 세계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곳은 천재의 영역, 예술적 영감과 그 신화를 믿는 세대들의 영역이었다.”
화가 -혹시 지금 조영남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저는 그가 대작을 했건 안 했건 별 관심은 없다. 그렇지만 (사건이 터진 뒤)본인 스스로 미술계 사람도 아니라며 꼬리 내리던 모습은 정말 실망스러웠다. 지켜야 할 이미지와 버려도 될 이미지를 구분했으면 좋았을 텐데. 오랫동안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쿨’한 이미지, 그것만은 지켰어야 하지 않았을까? ‘아 몰랑, 뭐 그럴 수도 있지 뭘 그래’하는 자세를 보여줬다면 벌겋게 달아오른 성난 군중 앞에서 그런 멋진 태도를 취했다면, 진짜 현대 미술가가 될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의 이미지가 도덕적이고 반듯해서 대중의 사랑을 받아 왔던 것은 애당초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도 늦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다시 붓을 잡고 텔레비전에 나와서 그림 그리는 자세를 취해 줬으면 좋겠다. ‘뻔뻔함이 지속되면 진정성을 얻는다’ 이것이 디지털미디어의 시대, 조영남과 우리들 시대의 새로운 팩트인 것이다. 아무쪼록 이대로 그렇게 꼬리 내리는 볼썽사나운 일만은 하지 않기를 바란다.”
-사건의 영향으로 미술계를 못 믿는 풍조가 생겼다고 보는가?
“이 질문은 사람들이 그동안은 미술계를 믿어 왔음을 전제로 한다. 도대체 언제 그랬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대작과 위작 이 둘의 공통점은 ‘무엇인가를 베낀다’는 것에 있다. 그것이 모방하는 대상은 결국 미술의 권위이다. 모방품이 조악하다고해서 원본이 가치를 잃지는 않는다. 미술계에 관한 믿음, 시스템에 관한 믿음이 곤두박질 쳤다고 해서 문화적 가치로서의 미술 자체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믿음은 꽤 긴 역사를 지녔고, 그래서 생각보다 견고하다.”
-법이 판단하겠지만 예술가의 눈으로 봤을 때 이번 사건을 사기로 보는가?
“사기로 보지는 않는다.”
-왜 그렇게 생각하나?
“‘조영남이 직접 그렸다고 오해를 해서 사람들이 작품을 샀으니 이것은 사기다’라고 보는 것은 너무 단순한 생각이다. 수 천만 원대의 작품을 컬렉팅하는 것은 생각보다 복잡한 구매 행위다. 많은 요소들이 작품 구매에 영향을 미친다. 고객이 조영남의 그림을 구매한 것은 그가 직접 그렸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것이 조영남의 작품이기 때문이라고 보는 편이 옳다.
더욱이 이는 법이 판단할 영역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작가가 그려야 예술이다’는 것을 법이 정할 수 있을까? 매 전시마다 작품을 우연이라도 볼지 모를 사람들을 위해, ‘이 작품은 내가 직접 그렸습니다’라는 푯말을 붙여야만 할까? 그렇다면 본인이 직접 그리지 않은 작품은 영구히 추방돼야 할까? 단언컨데 이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위대한 현대미술의 3분의 1은 사라지게 만들 규정이다. 이런 식의 법적 기준을 제정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번 사건은 법이 판단할 영역은 아닌 것이다. 어쨌든 과거 어느 시대의 그것처럼 들려 으스스하다.”

 

곧 세 번째 인터뷰를 내보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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